<프랑스의 소피> 여름
일 년 열두 달 중 가장 짧지만 가장 빛나는 계절, 여름.단 두 달간의 햇살 가득한 시간 동안 학교는 문을 닫고, 아이들과 어른 모두 일상의 틀을 벗어난다.이 두 달은 자유의 계절, 일년 중 가장 귀중한 시간이다.이 아름다운 여름,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햇볕 위에 몸을 눕히고…
불안의 서
허울만 좋은 명함을 호기롭게 내팽개치고 백수가 된 스물여섯. 평일 낮 한적한 수영장에서 레인에 가느다랗게 매달려 둥둥 떠 있던 내가 종종 떠오른다. 익사로 오해받는 게 귀찮아 가끔 배를 뒤집어 수영장 천장을 관망했다. 빈 껍데기 육신과 텅 빈 동공으로 보내는 생체신호였다. 그때나 …
엄마표 썸머캠프 생존일지 <엄마는 혼수상태>
#26 프라하 육아일기엄마표 썸머캠프 생존일지 <엄마는 혼수상태> “엄마 2층에서 자고있을 거야….큰 일 아니면, 엄마 좀 쉬게해주라…” 2층으로 올라와 방문을 닫았다. 문을 잠궜다. 머릿속의 신경이 툭 떨어져 나가고 비로소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방학 5주차였다. …
걸어서 걸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임신 사실을 알고 3개월쯤 지난 뒤였다.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니 좀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한동안은 글자로 내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당초에는 내 생애 처음 겪어보는 (아마도 마지막일) 임신과 출산, 육아의 경험을 …
다소 느린, 관찰의 즐거움
비 오는 날 창문 앞에 서 있으면, 유리 위로 흐르는 빗방울이 저마다 다른 속도로 떨어진다. 어떤 것은 서두르듯 곧장 내려오고, 어떤 것은 머뭇거리다 옆길로 새어 간다. 한 방울이 다른 방울과 부딪혀 합쳐지면 속도가 빨라지고, 또 다른 방울은 제 길을 잃은 듯 위태롭게 흔들리다 멈춘다…
[프랑스의 소피]지중해의 등대와 어머니
뜨거운 태양이 온몸을 따갑게 내리쬐는 계절, 다시 한번의 여름이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에 찾아왔다.이 바람 부는 섬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전설들이 바다와 함께 숨 쉬고 있다.반은 인간, 반은 바다의 신비를 품은 인어 이야기부터, 옛 해적들이 숨겨 놓았다는 보물들, 그리고 거…
시간이라는 것 - 삶이라는 것
드디어 ... 주 7일의 삶을 끝내게 되었다. 1년 넘게 해오던 아르바이트 마지막 근무를 끝냈다.이제 좀 쉬어볼까 - 방학이 3주 남은 시점에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남은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고민하는 동시에 다음 학기 수강 신청을 했다. 졸업을 최대한 앞…
🎤 오지 오스본: 무대 위의 광기, 가정 안의 따뜻함
🎤 오지 오스본: 무대 위의 광기, 가정 안의 따뜻함 ― 《The Osbournes》가 보여준 전설의 진짜 얼굴 며칠 전, 오지 오스본의 마지막 무대 Back to beginning 영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마지막 공연에 참여했고 오즈본은 여전히 눈빛은 날카롭고,…
감정은 따라오지 않아도 삶은 흐른다
공항 대합실.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발걸음과 소리 없는 밀침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짐을 끄는 바퀴 소리, 초조한 숨결, 손짓 대신 몸으로 길을 터주는 움직임까지, 무질서의 질감이 공기 속에 퍼져 나갔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오히려 이 장면은 익숙했다. 이 익숙함은 곧, 한국에서 점…
요가,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낯선 타지에서 나를 환대해 주는 공간이 있다는 건 큰 위로와 힘이 된다. 그리스 현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던 건 뜻밖에도 요가원 덕분이었다. 혼자 조용히 수련하러 갔을 뿐인데 그리스인 친구와 이집트인 친구가 생겼다. 늘 따뜻한 미소와 진심 어린 환대를 받았다. 호기심 많은 이방인…
지칠 때는 그냥 주저 앉아보자
아 - 방학을 잔뜩 누리려했더니 어쩌다 또 다시 주 7일을 삶을 살게 되었다. 다음 학기에는 들어야할 수업들이 많아 이번 방학까지만 근무해야한다고 사장님께 말씀 드렸다.말에는 참 힘이 있다고, 그만두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뱉어버리니 왠지 출근하는 게 고역이다.일은 힘들지 않지만 하루 1…
그러니 살아있으라
"울산대 병원입니다" 익숙한 간호사의 목소리가 전두엽을 울린다. 한여름의 캐럴 같은 알람 버튼. 벌써 일 년이 지났구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지정된 9년 전. 아산병원에서 차트를 작성하면서 알았다. 나는 '생존자' 그룹에 속해있었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 이 공기살…
무풍지대
어느새 2025년 하반기의 첫 달도 후반에 접어들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작심삼일은커녕 12월이라고 해서 한 해를 돌아보지도, 1월을 맞이하며 새로운 계획을 세우지도 않는다. 이루고 싶은 일이 없어서일까?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기 때문인 걸까? 매주 두 장씩 사보아도 결코 …
기획 노동을 아시나요? 보이는게 다가 아닙니다.
📍4줄 요약📍1. 기획노동의 존재를 인식해야 합니다. 2. 의사결정의 피로감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3. 배우자와의 협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4. 당사자가 돼봐야 보이는게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 기획 노동이 있습니다.저희 가족은 어렸을 때 부터 지금까지, 다같이 외…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스무 살부터 지켜 온 나만의 작은 원칙이 있다. 세상에 하고 싶은 건 많고,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니 무언가 선택해야 할 때 스스로 기준을 두었다. 그건 바로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학 시절엔 교환학생, 사진 동아리, 대외 활동 등 대학생만 할 수 있는 경험을 온전히…
집
나의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 유학가기 전 까지 살던 집에 살고 계시다. 내가 한국을 떠난 후 이 집을 떠나 다른 도시에 사시다가 아빠가 퇴직하면서 다시 이사 오셨다. 다시 그곳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리모델링을 계획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설랬다. 마음 같아선 당장…
녹색어머니회는 왜 이름이 그대로일까?
남편의 육아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고로, 지금 남편은 굉장히 불타올랐다. 자기가 숨겨놨던 아이들을 신나게 할 코스튬들을 번갈아 입으면서 다른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덕분에 아이의 어린이집 시절에 입었던 공룡, 피카츄 등이 막 튀어나온다. 어제는 녹색어머니회를 하다가…
응원이 필요한 날
검색창에 '구름 레이더'를 적고 엔터 키를 눌렀다. 30분 단위로 시간을 설정하고 재생 버튼을 클릭하니, 수도권 두 세 곳에서 구름이 피어올라 순식간에 덩어리를 만들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동했다. 서울의 한낮 최고 기온은 37도까지 올라갔는데, 근대적 방식의 기상 관측이 이루어진 이래 …
놓침의 기쁨
마케팅의 'ㅁ'도 모르는 내가 방학 프로젝트로 마케팅 플랜을 짜고 있는데, 이번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이끌 단 한 문장을 뽑아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내고 있다.모든 제안에는 나름의 이유를 함께 설명해야 하기에, 이유들을 찾던 중, FOMO가 떠올랐다. 정확히 어떤 말의 줄임말이었더라 - …
[프랑스의 소피] 너는, 나와 같지 않기를
드륵드륵, 분홍색 자전거 페달 위로 너의 반짝이는 두 다리가 힘차게 내려앉았다가, 살며시 물러나기를 반복한다. 작은 몸에 꼭 맞는 자전거, 그 위의 동그란 핸들엔 별처럼 반짝이는 너의 손이 야무지게 얹혀 있다. 바람은 머리칼을 흔들고, 그 사이로 나비처럼 가벼운 …